뇌 연구는 ‘인간학’…인문학이 질문하고 자연과학이 답한다

(한국엔지니어클럽 뉴스레터 2012년 10월 5일자)
 

“뇌 연구는 ‘인간학’…인문학이 질문하고 자연과학이 답한다”

S&T Playground/Platform Talk 2012/10/05 12:27

 

 

 

서울에서 가장 공기 좋은 동네인 홍릉, 국내 대표 국책연구기관의 한 건물 연구실. 길쭉한 방 안에는 양쪽 벽면을 전부 차지한 책장과 창문을 등지고 놓인 책상 하나, 입구 쪽에 자리한 둥근 탁자 등이 단출하게 놓여있다. 방문객용으로 마련된 탁자에는 이미 먼저 온 손님들이 겹겹이 누워있다. 얇고 널찍한 판형의 학술지들 사이에서 ‘노론 300년 권력의 비밀’이라는 두툼한 책도 눈에 띄었다. 구석에 세워진 검정색 장우산 손잡이에는 볼펜으로 ‘신희섭’이라고 적은 손 글씨 이름표가 달려있었는데 그 작은 천 조각이 연구실을 아늑하게, 대한민국 1호 국가과학자를 친근하게 만들었다. 이 방과 우산의 주인이 “비가 안 오면 우산 되가져가는 것을 까먹을 수도 있다”는 흔한 걱정을 하는 것도 왠지 신기했다. 세계적인 뇌과학자인 그는 간질, 공포, 통증 유전자 등을 잇달아 밝혀냈고, 특히 기억 관련 연구에서 권위자다. 신 박사는 올 6월부터 KIST 뇌과학연구소장직을 마치고, 신생 연구기관인 IBS의 인지및사회성연구단 단장으로 선정되었다. IBS 본원이 완성되기 전에 KIST에 공간을 빌어 연구실을 운영하고 있다.

 

날렵하고 마른 체구의 신 박사 옆으로 6척을 훌쩍 넘는 건장한 체격의 젊은 남자가 마주앉았다. 고려대학교는 2009년 9월 WCU(World Class University:세계수준연구중심대학) 사업의 일환으로 일반대학원에 뇌공학과를 설립하고 국내외 석학들로 교수진을 구성했다. 이후 뇌 연구 분야의 잠재력 있는 신진연구자들을 선발했는데 그 중 하나가 올해 초 부임한 민병경 교수다. 부임된 순서대로 전화번호 뒷자리를 부여받아서 본인은 ‘남자 8호’라고 말하며 웃었다. 그는 ‘뇌-컴퓨터 인터페이스(BCI, Brain-computer interface)’를 넘어 뇌파와 초음파를 이용한 ‘뇌-뇌 인터페이스(EEG & Ultrasound Brain-Bran Interface)’ 개발을 추진 중이며, 초음파처리 신경조정(Neuro-modulation by sonication)과 의식(Consciousness) 분야를 연구할 계획이다. 현재는 3명의 첫 제자들과 함께 실험실 장비를 비롯한 연구 환경 구축에 바쁘다.

 

신희섭 박사와 민병경 교수가 지난 9월 28일, 추석 귀성을 앞두고 자리를 함께 했다. 현재 우리나라 뇌과학 연구를 이끄는 권위자와 미래 뇌공학 발전을 걸머진 젊은 연구자의 만남이었다. 3시간 30분이 순간처럼 느껴질 만큼 흥미롭고 유쾌하며 진지한 대화로 채워졌다. ‘뇌’를 소재로 한 그들의 연구와 인생 이야기를 공유한다. 

 

◆ 뇌 연구…“거인의 어깨보다 자신의 땅이 있어야 한다”

 

과학의 마지막 전선(the last frontier of science)라고 불리는 뇌 연구는 21세기 과학기술분야의 가장 확실한 화두다. 뇌의 무게는 인체 체중의 약 2%에 불과한 1300~1400g 정도이지만 심장에서 나가는 피의 15%, 들여 마시는 산소의 20~25%를 쓴다. 이는 인간의 뇌가 그 크기에 비해 매우 많은 기능을 수행하고 있음을 시사하는 부분인데 단순히 운동, 감각을 조절하는 기능 이외에 감정, 사고, 언어, 기억 등 인간을 인간이라고 표현할 수 있는 기능과 흔히 마음(mind)이라고 불리는 고등신경 정신 기능까지도 모두 뇌가 담당하고 있다. 때문에 뇌연구는 치매 등 생물학적 난치성 질환 극복은 물론이고 폭력이나 우울증 등 행동신경 연구와 뇌 정보처리 기전을 응용한 인공지능의 개발까지 폭넓은 분야에서 진행된다.

 

하지만 불을 밝힐 가능성이 높다는 것은 현재 매우 어둡다는 의미. 아직도 대부분이 미지의 세계인 ‘뇌’에 대해 연구자들은 어떻게 접근하고 있을까. 그들의 연구 나침반은 무엇인지 물었다.

 

◇ 신희섭 박사(이하 ‘신’)=“뉴튼이 그런 말을 했지요? ‘내가 다른 사람들보다 멀리 보았다면 그건 내가 거인의 어깨 위에 서있었기 때문이다.’ ‘거인의 어깨’는 아인슈타인의 좌우명으로도 알려져 있죠. 하지만 이론생물학(theoretical biology)이 아니라 실험생물학(experimental biology)에서는 거인의 어깨가 아니라 자신의 땅이 있어야 합니다. 실제 현장에서 연구할 때는 세상에 없던 것을 갑자기 하는 것이 아닙니다. 기존에 연구된 것들이 있어야 하고, 그것이 내가 갖고 있는 아이디어와 자원(resource)과 연결이 되는지를 봐야 합니다. 검증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추고 있는지도 생각하고 이를 근거로 아이디어를 세우죠.

 

제가 1991년에 처음 뇌를 연구하고자 했을 때도 ‘뇌와 의식(consciousness)’을 소재로 유전학적인 연구하자고 해서 시작한 것이 아니라, 의식신경세포의 기능에 영향을 주는 유전자돌연변이를 주제로 새로운 유전자를 찾는 연구를 한 것이죠. 현재도 저희 연구실에서 하던 일들을 기본으로 하여 새로운 질문을 세우고 검증합니다. 유전학을 기반으로 한 연구실이니 뇌와 관련된 유전자돌연변이를 찾지요. 예를 들면 ‘공포 공감 뇌 회로와 매커니즘’ 연구는 ‘쥐들도 타인의 고통을 공감하는 능력을 갖고 있을까? 어떻게 하면 그걸 볼 수 있을까?’ 하는 질문에서 시작됐습니다. 흔히 ‘측은지심(惻隱之心)이라고 하는 고등기능의 기본이 되는 ’공감기능‘을 갖고 있는지 궁금하여, 검증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게 되었죠.”

 

◇ 민병경 교수(이하 ‘민’)=“이번에 고대에 자리 잡으며 연구실 이름을 ‘마인드 브레인 랩(Mind Brain Lab.)’이라고 광범위하게 지었습니다. 앞으로의 주제에 제약을 걸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는데, 그래도 뇌파 연구가 기반이 될 것입니다. 제가 뇌 분야에서 처음 맡은 일이 삽살개의 뇌파를 측정하는 일이었습니다. 개를 돌보는 일이 수반되는 임무라 아무도 안 하려고 했기 때문에 학사 연구생인 제가 맡게 됐죠. 그렇게 뇌파와 인연을 맺은 것이 하버드대학교에서 진행한 BCI 연구로 이어졌습니다. ‘아바타 프로젝트’로 소개된 연구였는데 사람의 뇌파를 이용하여, 동물의 사지를 움직이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지금은 뇌파에 이어 초음파도 중요한 도구입니다. 이전에는 뇌로 신호를 주기 위해 뇌 안에 전극을 넣었지만, 지금은 초음파 기기를 사용해 뇌 안의 특정 지역에 두개골을 열지 않고 에너지를 전달할 수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두개골을 열지 않은 상황에서, 컴퓨터에서 뇌로 신호를 전달하는 기술이 매우 어려워서 BBI 개발이 힘들었는데 큰 발전이 기대됩니다.”

 

◇ 신=“그렇죠. 자기가 하는 땅이 있어야 중요한 질문에 답할 수가 있죠. 또 큰 질문을 해야 큰 답을 얻고, 다양한 길을 갈 수가 있습니다.”

 

◇ 민=“현재는 뇌공학과에 소속돼 있고, 관련 분야를 연구 중이지만, 뇌 연구자로서 사람의 정신세계에서 가장 핵심이자 궁극적인 위치에 있는 ‘의식’에도 큰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 신=“‘의식(consciousness)’은 뇌 기능의 핵심인데, 이 ‘의식’이라는 것은 정말 굉장히 정의하기 난해한 상태입니다. 그래서 이보다는 분명한 ‘의식이 없는 상황’을 두고 ‘의식이 있는 상태’로 만드는 방법을 연구하며 접근하고 있죠. 사실 의식은 칸트가 고민했던 주제고, 불교의 핵심 주제이기도 합니다. 불교를 석가모니 한 사람의 논리가 아니라 그 시대의 사상이 농축된 것이라고 보면, 항상 인도사람들에게 경이로움을 느낍니다. 내가 ‘본다’는 것이 감정인지 느낌인지 인지인지를 생각하고 탐구해서 기록한 사람들이에요. 반면 뇌과학적인 영역에서 보면 조선시대의 성리학은 매우 부족하다고 생각됩니다. 자신이 속한 당파의 이익을 위해서 학문을 했기 때문인지, 인도 사람에 비해서 생각한 게 훨씬 얕아 보입니다. 이렇게 철학이나 종교에서 만들어낸 관념을 논의하는 것이 뇌과학을 연구하는데 도움이 됩니다. 연구자로서 스스로에게 무엇을 질문할 것인지가 만들어지죠. 뇌과학은 인문학보다 더 큰 주제가 됩니다. 마음과 육체의 모든 것이 뇌에서 비롯되며, 인간의 활동이 뇌기능에 의존하는 것이니 뇌과학은 곧 인간학이죠.”

 

◇ 민=“맞습니다, 뇌과학을 비롯한 융복합 학문은 인문학에서 질문을 던지고 자연과학에서 답한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 사실 제가 7년에 걸쳐 쓴 이론논문이 하나 있습니다. 굉장히 복합적인 정보를 단일화하는 ‘의식’을 탐구하면서 ‘시상(thalamus)’에 있는 ‘TRN’이라는 막에 주목해봤습니다. 통합중추인 시상은 냄새를 제외한 모든 감각 신호를 대뇌피질에  중계하며 뇌로의 입력 정보에 대한 주도적인 조절을 합니다. 특히 여기에 있는 ‘TRN’이라는 막이 시상과 대뇌 피질 사이의 정보 조율을 담당하는 해부학적 위치와 다양한 감각 신호의 중첩이 일어나는 구조 등으로 미루어 보아, 의식의 중심 장소라는 이론으로, 실험까지 해보고 싶었지만 아직 그 기회는 없었습니다. 주 연구는 따로 하면서 혼자서 진행을 하느라 매우 오래 걸렸지만 논문을 내고 나서 ‘매듭을 지었다’는 생각에 매우 보람 있었습니다. 또 특별한 의미가 있는 것이, 제 논문이 신경학자인 제임스 오스틴(James Austin) 박사의 ‘Mediating selflessly(MIT출판사, 2011)’에 인용된 것입니다. 미국에서 매우 힘든 시기를 보낼 때였는데, 미국인 원로 교수님께서 손수 파란색 펜글씨로 ‘이론이 너무 마음에 들어서 내 책에 인용하고 싶다’고 쓴 편지를 한 통 받았고, 최근에는 인용된 부분을 복사해서 고맙다며 다시 보내주셨습니다. 어렵게 쓴 이론 논문을 누군가가 알아보고 격려해 주어서 어려운 시절에 마음에 힘이 됐습니다.”

 

◇ 신=“TRN이 정서에도 아주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는 내용을 봤습니다. 저도 관심이 아주 많죠. 그 논문을 저에게도 보내줄 수 있나요?”

 

◇ 민=“물론입니다.”

 

 

 

◆ “필요로 하는 사람 늘어나 뇌 조작을 통한 치료 받아들여질 것”

 

뇌 연구와 관련해 점점 깊은 이야기로 빠져드는 그들을 보다 보편적인 주제로 모셔왔다. 뇌를 연구하는 사람들은 누구인가였다. 뇌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는 연구자들에는 두 가지 특징이 있다. 하나는 뇌 연구학자의 70% 이상이 현재 생존하고 있을 정도로 최근 들어 급속히 발전하는 신생학문이라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융합’이라는 두 글자로 표현하기엔 아쉬울 정도로 수많은 전공과 학문이 연계되어있다는 것이다. 수많은 과학기술분야 중 가장 다양한 배경의 사람들이 참여하고 있는 뇌 연구의 미래가 어떻게 갈 것인지도 함께 물었다.

 

◇ 신=“저도 의과대학을 나왔지만, 뇌 과학은 전통적인 생명 관련 학과 외에도 굉장히 다양한 사람들이 진행하고 있습니다. 유럽에서는 오래 전부터 전통심리학을 하는 연구자들도 행동연구를 위해 뇌 과학을 공부해왔고, 한국에서도 심리학과에서 뇌 연구하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또 예일대에서 뇌를 연구하고 있는 이대열 교수는 서울대 경제학과 출신이죠. (이대열 교수는 요즘 실험실에서 원숭이를 대상으로 참을성과 대가에 대한 뇌 반응, 돈을 얻었을 때와 잃었을 때의 뇌 반응 등을 연구하고 있다. 사회적 행동 선택을 일으키는 이른바 ‘사회적 뇌’가 연구주제인 신경경제학자다.) 저는 다양한 학부전공자들이 뇌 연구를 하는 게 좋은 것 같습니다. 학부에서 배운 것이 굉장히 중요한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멀리 보면 더 새롭고 혁신적인 연구를 할 수도 있죠.”

 

◇ 민=“저도 어쩌다보니 여러 분야와 인연이 닿았습니다. 어려서 과학 분야, 특히 기초과학에 관심이 많았는데 대학 지원 시에 서울대에 2지망으로 산림자원학을 전공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평소 자연 과학에 대한 꿈을 버리지 않고 화학을 부전공하고, 일반 선택으로 물리학 과목까지 수강했습니다. 지금이야 복수 전공이 일반적이지만, 당시에는 부전공을 하는 것이 쉽지만은 않았습니다. 이후 KAIST 물리학과 뇌연구실에 연구생으로 있으며 뇌파와 처음 인연이 닿았고, 얼마 후에 외국으로 유학을 떠나게 되어, 석사는 미국에서 신경생물학 및 생리학으로, 박사는 독일에서 생물심리학(뇌파)으로 했습니다. 오히려, 학부 시절의 다양한 경험 후에, 대학원 시절부터 미국 학생들과 함께 새롭게 신경과학을 공부할 수 있어서, 뇌 과학 안에서도 중립적인 안목이 생긴 것 같습니다. 하버드 의대 연구원 시절에는, 또 다시 새롭게 초음파를 이용한 뇌기능 조절 연구를 하게 되어서, 다양한 뇌 연구 방법을 익힐 수 있었습니다. 저한테는 다양한 경험을 한 것이 당시에는 마음고생이 컸는데, 지나고 보니 개인적으로 소중한 시간들이었고, 앞으로 뇌 연구를 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으면 합니다. 뇌에 대한 연구에선 학문의 구분이 큰 의미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 신=“민 교수는 전공을 ‘융합학’이라고 해도 되겠네요.(웃음) 우리 두 사람도 뇌과학자와 뇌공학자로 구분돼 있지만 예전보다 거리는 점점 가까워졌습니다. 저는 반드시 현실에서의 활용을 전제하지 않고 현상에 대한 궁금증을 해결하거나 인문학적인 질문에 답하기 위해 연구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목적에서 진행한 연구결과도 다른 사람들이 봤을 때는 충분히 이용할 수 있죠. 특히 생명과학 쪽엔 더 많죠. 기초연구가 질병치료의 힌트를 줄 수 있으니까요.”

 

◇ 민=“저도 기존까지는 순수 호기심에서 뇌파를 연구해왔는데, 사회 기여를 통해 보람을 얻는 것도 중요한 부분인 것 같아 응용 쪽으로의 확장도 생각하고 있습니다.”

 

◇ 신=“점점 더 뇌 연구 결과가 우리 삶에 적용되는 범위가 커질 것이라고 봅니다. 예를 들면 예전에는 정신병원에 대한 부정적인 고정관념(stigma)이 강해서 아무리 힘들어도 정신과에 가는 걸 꺼려했지만, 요즘은 임상이 잘 되는 곳 중 하나가 정신과입니다. 예전에는 심각한 주우울증(Major Depression)을 앓고 있어도 ‘그런 건 노력해서 해결해야 하는 것’이라는 인식 때문에 약을 먹지 않으려 했어요. 정신과 치료가 필요한 사람들이 많아지고 이에 대한 저항감이 없어지는 것처럼, 또 장기이식이 보편화되는 것처럼, 뇌 시술에 대한 인식도 달라질 겁니다. 인공장기 이식이 이루어지는 시점이 되면 뇌를 조작(manipulation)하는 것도 받아들여질지 모르죠. 우울증이 심해 도저히 약으로 치료가 안 되고 그대로 두면 자살할 사람들이 아침마다 커피 한 잔을 마시는 기분으로 뇌에 자극을 실시할 수도 있죠.”

 

◇ 민=“모닝커피와 같은 뇌자극이라…그건 특허감인데요, 박사님. 제 학생들 중에 BBI 연구에 대해 이런 질문을 하는 친구들이 있습니다. ‘뇌-뇌 정보교환이 이루어지면 나중에 원치 않는데도 누가 자기 뇌의 정보를 가져갈 수도 있지 않느냐’고요. 그랬더니 다른 학생들이 대답합니다. ‘휴대폰도 받기 싫으면 전원을 꺼놓듯이 당연히 안전장치도 같이 개발될 것이다’. 제 생각에도 뇌에 대한 연구는 이미 시작되었고, 많은 사람들이 계속 연구할 것입니다. 악의적이거나 비윤리적인 활용에 대한 우려로 연구를 제한하는 것보다는, 뇌 연구는 뇌 연구대로 계속 발전적으로 진행이 되어야 하고, 동시에 윤리적으로 발생할 수 있는 문제를 극복할 수 있는 연구도 함께 병행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컴퓨터 바이러스 백신처럼, 선의적 과학 기술이 악의적 과학 기술을 이길 수 있도록, 더 뛰어난 연구가 진행되어야 합니다.”

 

◇ 신=초음파를 활용하는 게 잘 개발되면 뇌 실험에 참여하는 저항감이 아무래도 덜하겠죠. 뇌에 대한 임상도 점차 보편화될 거라고 봅니다. 예전에 산부인과도 임상이 힘들었지만 결국 인공수정이나 시험관아기를 통한 임신과 출산의 길이 열리지 않았습니다. 절실히 필요로 한 사람들은 실험에 참여하고, 또 개발된 의료법을 받아들입니다. 뇌 조작 역시 절실한 사람들이라면 화학약물적 처치(chemically invasive) 못지않게 육체적 처치(physically invasive)를 받아들일 거라고 봅니다. 치매, 우울증, 알코올 중독 등 필요한 사람의 범위도 점점 넓어질 것이고요.

 

물론 아직까지는 다소 먼 이야기죠. 우리나라에서 사람에 대한 뇌 연구를 하는 것은 매우 힘듭니다. 사람의 뇌에 대한 정보는 신경외과 수술할 때 많이 얻어지는데 아주 소량의 뇌 표본(sample)도 귀합니다. 브라질은 완전히 달라요. 브라질은 6년 전쯤 쌍파울로 대학의 교수가 아이디어를 내서 인간뇌조직은행(Brazil Ageing Brain Bank)을 설립했고, 의사가 기초적인 검사를 해서 사인(死因)을 확실히 알 수 없는 사람들은 무조건 24시간 내에 부검(autopsy)을 하도록 하는 법안을 만들었어요. 집에서 자연사 한 사람들도 전부 부검 대상이 되고, 오토바이를 타다가 사고를 당한 젊은 남자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리고 가족과 상담해서 뇌를 기증(donation) 받고 이력(history)을 분석하죠. 브라질은 이미 수천 개의 뇌 조직을 확보했습니다. 실험이 훨씬 잘 될 수 있죠.”

 

◆ “뇌 분야의 미래도 이공계위기 극복에 있다…학생들에게 현실적 보상 필요”

 

뇌 연구가 삶에 미치는 막대한 영향력을 간파한 선진국은 20세기의 마지막 무렵 본격적인 지원에 시동을 걸었다. 미국은 지난 1990년 ‘뇌 연구 10년’을 발표했고, 일본은 1993년 21세기를 ‘뇌 연구의 세기’로 선언했다. 우리나라도 지난 1998년 뇌연구촉진법을 제정했고, 2008년에는 2017년까지 1조5000억원을 투입해 뇌연구분야 세계7위를 달성하는 것을 목표로 뇌연구촉진사업을 운영 중이다. 실제 연구자들의 체감은 어떠한지, 우리나라 뇌 연구의 발전을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인지 화두를 던졌다.

 

◇ 민=“미디어를 통해 보는 내용들이 현실적으로 다가오지는 않습니다. 장학금이나 인재양성, 교육 등에 진행되는 사업들이 차이가 있기 때문이기도 하고요. 하지만 점점 더 나아지는 것은 분명한 것 같습니다. 장기적으로 볼 때 정부 차원의 지원이 중요한 부분이기 때문에 뇌 연구 분야에서 한국의 시동이 잘 걸린 것 같습니다. 점점 경쟁력이 붙을 거라고 희망적으로 보고 있습니다.”

 

◇ 신=“그렇죠. 희망적이죠. 물론 아직까지는 우리나라의 투자가 더 적지만, 미국은 감소를, 우리는 증가를 경험하고 있습니다. 결국 지원과 발전은 비례합니다. 연구비 증가와 성장이 아주 나란히 가고 있다는 분석도 나와 있죠. 우리나라의 연구 지원정책도 발전해왔습니다. 지원규모가 커졌고, 장기간 안정적으로 진행되는 것도 늘어났고, 문제가 생기면 다시 할 수도 있고요. 하지만 이제부터는 또 달라져야 합니다. 연구 목적이 궁극적으로 인류를 풍족하게 하고 국가경쟁력을 키우는 건데, 그건 결국 연구결과의 ‘응용(application)’에 달려있습니다. 경제가 어려워지니까 자연스럽게 이 부분이 더 강화되고 있습니다. ‘내가 재미있어서 하는 연구’는 줄어들고 실제 인류에게 도움이 되는 가능성이 높은 연구가 많아지고 있죠. 개인적으로도 연구결과는 국가경쟁력과 인류복지에 도움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려면 연구가 응용까지 이르는 주기와 방식이 바뀌어야 합니다. 일단은 결과를 기대하는 기간이 지금보다도 더 길어져야 하고, 내 연구결과를 내가 적용하는 게 아니라, 다음 단계의 사람이 해야 합니다다. 지금까지의 시스템은 원리를 찾아낸 사람이 응용 연구까지 직접 해야 했죠. 이제 연구자의 전문 능력에 따라서 수행하는 연구 단계가 분업화 되어야 합니다. 미국 등 선진국에선 이미 그러한 시스템으로 움직이고 있습니다.

 

또 우리나라 뇌 연구 수준이 질적으로는 뛰어나지만 양적으로는 아직도 약합니다. 세계적인 연구가 진행되고 중요한 논문들을 발표하지만, 연구자수와 논문수의 절대적 양이 적습니다. 안정적인 발전을 위해서는 양적인 성장도 굉장히 중요합니다.”

 

◇ 민=“네, 뇌 연구 분야에서 맨파워(man power)가 커지려면 대학과 대학원에서 열심히 하는 학생들이 필요합니다. 아직까지는 고등학교에서 대학 가는 데에만 집중하는 사회 분위기인데, 한국이 진정한 과학 한국으로 발전하기 위해서는 대학에서 열심히 공부해서, 대학원 진학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사회 인식의 전환이 필요합니다. 물론, 대학원에서 전문적인 연구가 집중적으로 진행이 되어야 하겠지요.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패기와 열정을 가지고 연구를 계속 하려는 학생들이 많아져야, 우리의 미래가 밝다고 생각합니다.”

 

◇ 신=“그건 뇌 분야 뿐 아니라 우리나라 이공계의 문제이기도 하죠. 초중학교 애들하고 얘기해보면 뇌, 컴퓨터 등을 연구하고 싶다는 학생들이 굉장히 많습니다. 고등학교 가보면 확 줄어들고 대학 입학할 때보면 거의 없죠. 왜냐면 그때가 되면 ‘내가 저기 가서 어떻게 될 것인가’를 봅니다. 학생들과 학부모들이 진로를 결정을 할 때 장래와 전망은 굉장히 중요한 요소입니다. 제가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의사가 아니라 연구자로 남겠다고 쉽게 결정할 수 있었던 것은, 기초의학교실에 남으면 교수가 되는 건 확실한 거였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현실적인 보상(incentive)이 없었다면 연구하겠다고 선택하기가 쉽지 않았을 겁니다. ‘다른 것을 희생하고서 학문에 내 인생을 바치겠다’를 최우선순위로 하는 친구들은 극소수입니다.

 

현재 이공계의 문제는 학생들에게 매력적인 미래를 제시하지 못하고 있는 겁니다. KIST는 초창기 해외과학자들을 유치할 때 대학교수 보다 3배 많은 월급과 사옥을 제공했습니다. 덕분에 제가 대학 다닐 때는 KIST에서 연구하는 게 꿈인 사람들이 많았고, 의대가 수험생들에게 가장 인기 있는 학과도 아니었습니다. 학생들의 열정이나 애국심에만 호소할 일이 아닙니다. 아이들이 이공계에 가야겠다는 사회분위기가 먼저 만들어져야 합니다. 과학자인 내가 이런 말을 하면 아무래도 설득력이 적죠. 정치인들이 인식하고 실행해야 합니다.

 

사실 요즘 우리나라의 영화(榮華)가 얼마나 오래 갈 것인가 굉장히 걱정이 됩니다. 지금 우리는 반만년 역사에 처음으로 꽃을 피운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청나라를 다녀와서 열하일기(熱河日記)를 쓴 연암 박지원은 200여 년 후 우리나라가 중국에 따라잡힐 것을 걱정할 거라곤 상상도 못했을 겁니다. 우리나라의 역사를 돌아 볼 때에, 우리가 지금 중국과의 관계에서 경쟁에 질지도 모른다고 걱정한다는 것 자체가 얼마나 럭셔리(luxury)한지 알 수 있죠. 그런데 이게 얼마나 오래 갈까요? 2013년도 신입생 수시모집에서 서울대 조선공학과가 사상 처음으로 미달됐습니다. 산업의 패러다임이 바뀌어도 조선은 필요할 텐데 말이죠. 소니가 망한 건 그들이 게을러서 그런 게 아닙니다. 국제회의에 삼성은 30~40대의 젊은 엔지니어들이 나오고 소니는 50대의 시니어들이 나올 때 이미 예견된 거죠. 우리나라가 지금과 같은 사회분위기로 간다면, 삼성전자가 중국의 어느 기업에 지는 것은 시간문제입니다. 우리는 미국처럼 외국인 과학자를 흡수할 만한 여건과 문화도 아니죠. 굉장히 심각한 거예요. 반만년 역사에 처음으로 피운 꽃이 스러지게 두면 안 되죠.”

 

두 사람의 대화는 뇌로 시작해 한국의 미래로 끝났다. 신희섭 박사가 ‘현실’을 이야기 하고, 민병경 교수는 ‘열정과 꿈’을 강조했다. 보기 좋은 그림이었다. 서로 반대로 이야기 했다면 다소 설득력이 떨어졌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개인적인 미래 계획을 질문했다. 신 박사는 “잣나무를 심겠다”고 답했다. 잣나무를 심는 건 대학 졸업 당시 계획으로, 그때 실천하지 못한 것이 IBS 단장으로 선임되며 생각났다고 한다. 그 계획의 시작은 매우 단순한 발상이었는데, 고향집에 감나무만 있어서 다른 걸 심고 싶어서였다고. 잣나무는 열매를 맺기까지 20년 안팎이 걸린다는 건 나중에 친구에게 들어 알게 된 사실이다. 신 박사는 “잣나무는 내가 심고 다른 사람이 열매를 따도 좋다는 생각으로 심는 것”이라며 “잣나무를 심듯 사람을 키우겠다”고 말했다.

 

민 교수 역시 1994년 한 대형서점에서 뇌 과학을 처음 만난 날을 이야기 하며 운을 뗐다. 그는 “물질과 정신이 교차하는 영역을 공부하고 싶었던 꿈을 뇌 과학으로 이루어나가고 있다”며 “처음에는 노벨상을 받고 싶은 연구가 목적이었지만 이제는 스스로에게 부끄럽지 않고, 모든 사람들에게 의미 있는 연구 결과로 인류 사회에 기여하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두 사람의 사진촬영까지 모두 마치고, 신 박사가 민 교수에게 마지막 인사를 했다. “잊지 말고 이메일로 논문을 보내 달라”고. 뇌 과학 권위자의 기억 비법은 다름 아닌 지속적 ‘상기(想起)’였다. 플라톤은 상기를 통해 이데아에 대한 참된 인식에 도달할 수 있다고도 했으니 뇌의 능력을 높이는 건 생각보다 쉬운 일이다. 먼저, 대선을 앞두고 과학기술이 국가경쟁력에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모두에게 상기시켜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